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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게 Breguet 시계 역사

브레게 Breguet 역사와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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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세기이상 동안 프랑스에서 나온 여러 다양한 전문 보고서와 논문등을 통하여 볼때 브레게(Breguet)가 시계의 발전사에 미친 국제적 영향의 범위와 깊이에 대하여 심도 있는 증언을 해주고 있다.
Breguet가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문화에 있어서 하나의 본질적인 부분이 되어 있어서 불가피하게도 그 이름은 과거 유럽의 귀족정치, 부르주아 계급, 또는 사치스럽고 화려한 면에 대하여 서술하게 될 때 늘 상 떠오르게 되는 상황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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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게에 대한 평판은 과거 위대했던 인문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로는 알렉산드라 듀마스(Alexandre Dumas), 스탕탈(Standhal), 쥴스번(Jules Verne), 푸쉬킨(Pushkin)등 당대의 쟁쟁한 학자들이 있다. 그 외에도 오늘날 브레게를 현대시계의 아버지라 칭한 자도 있다. 

"Breguet"는 아브라함 루이스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에 의해 1775년에 설립되었다.
그는 당시 부유한 프랑스 부르조아의 딸과 결혼 하였고 신부의 넉넉한 혼인 지참금 덕분에 그의 작업장을 갖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watchmaker가 되기 위해 도제(徒弟)의 신분을 거치고 수학(數學)을 배우는 동안 그 자신은 어느덧 박식한 학자로 변모하였다.2.gif
브레게가 만든 시계를 소유하게 된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Queen Marie-Antoinette)는 브레게의 유일한 자동시계에 점점 매료하게 되었다고 말한적이 있으며, Louis XVI세 도 그의 시계에 호기심을 느끼고 몇 개를 사 주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당시 북극탐험을 준비 중 이던 선원 Bougainville에게 그가 만든 시계를 선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는 그의 작업장에서 두 가지 획기적인 성과를 이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페르레(Perrelet)에 의해 고안된 자동시계의 밸런스 베어링(balance bearing)에 충격 방지장치(shock resistance)를 달았고, 라 리피티션( la repetition)이라는 기계 알람장치를 고안해 냈다. 

이 두 가지가 결국 그로 하여금 막강한 권력과 재력을 지닌 귀족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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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브레게(Breguet)의 발명 중 가장 빛나는 업적은 오늘날에도 첨단 기술로 인정받는 뚜르빌용(Tourbillon:기계식 시계에 있어서 지구의 중력장에 의해 영향을 받아 시간오차가 발생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고난위도의 시계기술)일 것이다.

이로써 기계시계의 숙제로 여긴 시간편차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며 크로노미터와 같은 정밀도를 갖게 된다.

이런 발명이 있으므로 해서 브레게는 두 명의 부르봉 왕가(Bourbon kings),를 거치면서도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 하며 굳건히 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경우 브레게(Breguet)의 가장 중요한 고객 중 한 사람이었다.
그렇듯 Breguet 는 시대가 바뀌어 그 누가 지배를 하였든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watchmaker로 성장하면서 일찍이 1795년엔 퍼페춸 캘린더(perpetual calendar)와 문 페이스(moonphase) 시계를 장착한 첫 번째 시계를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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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오늘날까지도 세계 시계기술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신기술 이었고 이것이 너무도 유명한 탓에 그 당시에도 가짜가 나도는 일까지 생기게 된다.
이런 문제에 봉착하자 그는 그만의 비밀서명(secret signature)이 들어간 시계를 만들어내게 되는데 당시 조각가였던 쟝피레 드로즈(Jean Pierre Droz)와 함께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브레게는 그의 시계에 대해 진품에 대한 보증을 하기위해 모든 시계에 일련번호를 넣고, 장부에 기록을 남기며 판매일짜, 가격까지 기록해서 남겼는데, 이것이 오늘날에도 고문서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불행이도 브레게(Breguet)는 1807년에 스위스로 피난을 떠나게 되고 그 이후로 스위스에서 다른 watchmaker들과 장인들의 손으로 제조된 브레게의 시계에는 “Breguet et Fils”라는 사인이 들어가 있었다.

5.gif 그 결과 많은 시계전문가들과 수집가들 사이에서 브레게의 진정한 시계는 “그가 프랑스를 떠나기 전에 모두 팔렸다”라는 말까지 생겨나기도 했다.
훗날 브레게(Breguet)가 세상을 떠난 뒤 회사의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게 되는데, 회사가 200주년을 5년 앞둔 시점에 파리의 보석상 Jacques and Pierre Chaumet 가 새 주인이 되어 1970년부터 브레게의 북유럽 현대의 장(章)은 그 명성과 독창성을 단기간에 회복하면서 새로이 씌여지게 된다. 
그 결과 쇼메(Chaumet) 형제들은 작은 기적을 이루게 된다. 
오늘날 브레게(Breguet)시계는 스위스에서 가장 탁월한 재능과 솜씨를 지닌 장인들의 손을 거쳐 소량으로 생산되며 과거의 명성과 기술을 더욱 더 발전시킨 시계예술로 국제무대를 선도하는 브랜드로써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시계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현대감각에 맞도록 살려낸 스포츠어치, 드레스워치, mariner워치까지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브레게(Breguet)가 지닌 그 귀족성만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왜냐하면 아직도 브레게(Breguet)의 제품은 과거에 왕족, 귀족들만 보유할 수 있었던 하나의 신분을 나타내는 징표였던 “브레게의 회중시계“처럼 쉽게 만나보기 힘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