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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 르꿀뜨르 Jaeger-LeCoultre 시계역사

예거 르꿀뜨르 Jaeger-LeCoultre 시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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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 르꿀뜨르 Jaeger-LeCoultre 시계의 역사 16세기 중엽 프랑스의 위그노(Huguenot)교도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스위스의 작은 마을 발리 드 주(Valley de Joux)로 이주를 했다. 그러나 토양이 척박해서 농사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만의 청교도적인 인내와 끈기로 수공예 기술을 발전시켜 나아 갔으며 처음에는 귀금속 가공으로 시작한 이들은 시계부품 분야로 기술 수준을 높여 나갔다. 
그러한 연유로 인해 스위스 "발리 드 주(Valley de Joux)"는 오늘날 세계 최고 시계 명장(明匠)들의 고향으로 불리고 있다. 1559년 피에르 르쿨트르(Pierre LeCoultre)도 다른 위그노 교도들과 마찬가지로 피난처를 찾아 해발 1000m에 있는 발리드주의 르상티에(LeSentier) 마을에 정착했다.
11_01.gif 예거 르꿀뜨르의 역사는 그의 후예 앙트완 르쿨트르(Antoine Le Coultre) 때부터 시작된다. 앙트완은 30세가 된 1833년, 가족의 작업장을 떠나 동생 율리스(Ulysse)와 함께 전동 장치를 제조하는 공장을 설립했다.
그는 이곳에서 시계 내부의 기어와 휠을 디자인하며 시계 제조업체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앙트완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맨’이었다. 그는 100만분의 1m까지 잴 수 있는 밀리노미터(millinometer)를 개발했다. 이로 인해 정밀성이 매우 높은 부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또 1847년에는 키 없이도 태엽을 감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11_02.gif

이는 과거에 손으로 키를 꽂아 태엽을 감아야 했던 불편함을 없애주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1867년 그의 아들 엘리(Eli)가 회사를 물려받았다.
엘리는 작업장 수준이었던 공장을 대규모 현대식 공장으로 탈바꿈시켰다.

11_03.gif 오늘날 예거 르꿀뜨르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엘리의 아들 자크다비드(Jacques-David)가 회사를 물려받으면서였다. 
그는 1903년 프랑스 크로노미터 제조업자 에드몽 예거(Edmond Jaeger)와 손을 잡았다. 
스위스의 정밀한 시계 기술에 프랑스의 탁월한 미적 감각이 더해진 것. 그리고는 1937년 회사의 공식 명칭을 예거 르꿀뜨르(Jaeger-LeCoultre)로 정했다. 
혁신과 새로운 아이디어’는 예거 르꿀뜨르가 변함없이 추구해온 정신이다. 
시계와 관련한 수백여 개의 특허들이 이를 증명한다. 기네스 기록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1903년엔 회중시계 역사상 가장 얇은 1.38㎜ 두께의 시계를 발명했다.11_04.gif

또 회중시계의 시대가 지나고 손목시계가 유행하게 되자 예거 르꿀뜨르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계식 시계 장치인 ‘캘리버 101(Calibre 101)’을 제작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돼 있다.
11_06.gif 다양한 신제품이 개발됐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 제품은 1928년 탄생한 애트모스(Atmos)와 1931년에 처음 소개된 리베르소(Reverso)다. 
애트모스는 태엽을 감지 않아도 되는 최초의 시계로 주변 공기의 미세한 온도 변화로부터 필요한 에너지를 끌어냈다. 시계의 정교함과 디자인을 인정받아 지금까지도 스위스를 방문하는 귀빈들에게 선사되는 정부의 인기 선물이다. 

예거의 최대 히트작인 리베르소는 다이얼판을 감싸고 있는 케이스를 뒤로 뒤집으면 화려한 팔찌로 변신한다. 당초 리베르소 디자인이 탄생한 이유는 폴로 경기나 스키를 탈 때 시계의 다이얼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11_05.gif 예거의 최대 히트작인 리베르소는 다이얼판을 감싸고 있는 케이스를 뒤로 뒤집으면 화려한 팔찌로 변신한다. 당초 리베르소 디자인이 탄생한 이유는 폴로 경기나 스키를 탈 때 시계의 다이얼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충격 시 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케이스가 180도 회전하게 만든 것. 
원하는 그림이나 무늬를 케이스에 새길 수도 있다. 

정교함과 신뢰성을 더하기 위해 예거 르꿀뜨르는 92년 기존 공정에 ‘마스터 컨트롤 1,000시간 테스트(Master Control 1,000 Hour Test)’를 도입했다. 완성품 시계들은 1,000시간에 걸쳐 9가지 실험을 거치게 되고, 이 과정은 시계의 견고함을 증명하는 예거의 ‘보증수표’가 되는 셈이다. 쇼크에 얼마나 잘 견디는지, 평형 태엽의 조절 기능은 어떠한지, 온도 변화에 얼마나 잘 견디는지, 방수 정도는 얼마인지 등 꼼꼼하게 단계별로 테스트한다. 

11_07.gif 이 테스트를 통과한 시계는 케이스 뒷면에 검증을 한 장인들의 서명으로 인증을 받는다.
2003년 7월 국내에 처음 선보인 예거 르꿀뜨르는 아직도 본사를 스위스의 발리드주에 두고 있다. 
1,000여 명에 가까운 직원 중에서 200명 이상이 시계 전문 장인이고, 130명은 엔지니어일 만큼 여전히 개발과 창조에 많이 투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거 르꿀뜨르의 장인들은 혁신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스위스가 세계 최고의 시계 제조 국가로 명성을 쌓게 된 데는 170년 동안 시계만을 고집해온 예거 르꿀뜨르의 자존심이 숨어 있다.